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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립미술관 3 전시실 <상상하는 정원>​

2022.09.29 -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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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ulsan.go.kr/s/uam/bbs/view.ulsan?bbsId=BBS_0000000000000174&mId=001003001000000000&dataId=34900

https://blog.naver.com/studio1750

상상하는 정원

My Colorful Garden

《상상하는 정원》은 울산시립미술관이 마주한 울산 동헌의 풍경과 하늘을 감동시킨 효자 송도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전시장의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동헌의 뜰을 보고 있으면 미술관과 동헌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동헌에서 비치는 햇빛은 동헌과 미술관을 하나의 세계로 연결하는 미묘한 시공간을 연출한다.

 

전시에 참여한 설치미술 작가 STUDIO 1750(스튜디오 1750)은 이러한 영감을 토대로 미술관의 전시공간을 재해석하였다. 작품의 주된 조형요소인 ‘빛’과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전시, ‘상상하는 정원’을 거닐다 보면 동헌과 미술관이 안겨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공존하는 것 같은 모험의 여정을 체험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이 모험의 여정 동안 효자 송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한한 부모의 사랑을 돌아보면 어떨까?

부모에게 받기만 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린이, 소중한 사람에게 헌신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어린이, 문제에 부딪히면 스스로 길을 찾고 해결하는 어린이. 효자 송도처럼.

 

*효자 송도 이야기

미술관 서쪽 면에는 울산 유형 문화재인 ‘동헌 및 내아’가 있고, 동헌 연못 인근에는 울산의 효자인 송도선생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효자송도선생정려비)이 있다. 효자 송도는 가난했지만 병든 부모님을 위해 한겨울 죽순을 찾아 헤맸고, 잉어를 잡아 봉양했다는 기록이 역사책에 남아 있다. 울산 북구의 ‘효문동’이라는 지명도 송도의 효행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상상하는 정원 My Colorful Garden

사라진 정원, 2022.

방수천, 송풍기, 나무, LED 조명, 가변 설치

‘상상하는 정원’은 태초의 정원을 닮은 상상의 정원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 속 미지의 정원은 빛으로 만나는 미로, 상상 속 생물들을 만날 수 있는 사라진 정원 그리고 반짝일 기억 숲으로 이어진다.

 

울산시립미술관 로비, 3전시실, 복도, 세 개의 공간에 전시를 준비 하였고 각각의 공간에 미술관과 미술관 옆 동헌의 이야기를 연결하고자 한다.

 

동헌(東軒)은 조선왕조 지방 관청의 중심 건물이다. 수령(守令), 즉 사또[使道]라고 불리던 부사, 목사, 군수, 현령, 현감 등의 지방관이 직무를 보는 관청 건물로서, 오늘날의 시 청사, 군 청사 본관에 대응한다. 생활 공간이었던 내아(內衙)의 동쪽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동헌이라고 하였고,[1] 별도의 건물 명칭(당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기록에 따라서는 지방 군영(軍營)의 중심 건물인 진헌(鎭軒)과 찰방의 소재지인 역(驛)의 중심 건물도 동헌이라 호칭하였다.

(“위키백과” 참조)

 

과거의 관청인 동헌과 현대미술관의 만남 그리고 동헌에 위치한 ‘효자 송도선생의 정려비’의 이야기를 참고한다.

 

세 개의 공간을 파트별로 분류하고 하나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진다.

 

Part 1 빛의 미로 (로비)

미술관 입구를 지나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면 ‘빛의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작업의 주 된 주제는 빛이다. 빛을 따라 이어지는 미로를 지나 출구로 나오는 구조로 관람객이 그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미술관 창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작품의 컬러풀하고 불투명한 소재를 통과해 관람객에게 다가와 색을 입힌다.

 

효자 송도선생이 부모님을 위하여 10여 년 동안 모친을 보살피는 과정을 기리며, 그의 효행의 끝은 무지개 길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그의 삶에 기적같은 순간들이 삶에 드리워졌기를 기원하며 작품에 연결하고자 한다. 

 

‘빛의 미로’는 출구와 입구는 있으나 단단하게 막힌 벽이 아닌 커튼의 형식을 가지고 있어 관람객이 자유롭게 벽을 통과해 드나들 수 있다.”

 

감정을 전환하는 시각적 공간

이 공간은 미로 구조로 벽이 새워지고 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관객의 행동에 따라 벽은 또 하나의 출입 공간이 된다. 색색의 투명한 재료로 층이 있는 공간은 이동에 따라 다른 색상을 만나게 되고, 이것은 관객의 이동 경로에 따라 변화하면서 상상의 전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미로 형태의 설치 작품으로, 관람객이 미로 속을 직접 이동하며 감상할 수 있다. 색색의 비닐과 독특한 무늬로 채워진 공간을 지나며 현실의 고민을 잠시나마 잊고 기분을 전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코로나 펜데믹 19로 인하여 많이 힘들었지만 이작품을 통하여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 무지개다. 주변은 너로 인해 물들고 그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온전한 색을 발한다.”

무지개 너머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일상 속 마주하는 당신의 즐거운 순간은 영원하길 바라며...

 

Part 2 사라진 정원을 만나다.(3전시실)

빛의 미로를 지나 이어지는 3전시실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 현실에 있을 법한, 또 다른 시 공간에 존재할 미지의 공간에서 이상한 생명체를 만나다. 환경적인 혹은 유전적인 영향으로 변이되거나 진화하는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인위적으로 변해가는 도심 속 새로운 종들의 인공 정원이다. 공기로 채워진 각각의 유연한 조각들은 형태를 이루는 천을 사이에 두고 관객과 마주한다. 전시장에는 조명과 사운드가 함께 어울려 설치된다. 

 

어느 날, 유전자의 변형으로 변이될 동식물들은 알 수 없는 미래, 어느 미지의 섬 혹은 행성이 무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은 과거에 두려워했던 오늘의 모습일 수도 있을 거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큰 창은 동헌의 풍경을 마주하며 생경한 풍경을 만들고 안과 밖이 연결되는 시각적 체험을 통해 조화로운 공존을 그려본다. 큰 창 앞에는 커튼이 설치되어 있고 그것은 열렸다 닫히기를 30분 마다 반복하게 되는데 커튼의 개폐는 전시장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장치는 열렸을 때는 창을 통해 보여지는 과거 동헌의 모습과 닫혔을 때는 홀로그램 커튼을 통해 일부 차단된 외부 동헌의 풍경과 홀로그램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달라지는 전시장 내부의 모습에서 현재와 미래의 정원을 투영한다.

 

‘사라진 정원'은 도심 속에 살면서 잊고 지내던 정원의 기능을 돌아보고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내일의 정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Part 3 반짝일 기억 (복도)

 

동헌이 보이는 창 까지 연결된 복도에서는 참여형 전시가 이어진다.

전시기간동안 시민의 참여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 하는 작품이다. 관람객이 티켓을 보여주면 전시장 운영자는 박짝이는 금색 필름을 나눠 주고 관람객은 그곳에 반짝였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바람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담고 머리 위쪽에 매달아 설치한다. 그들의 바람과 희망은 반짝이는 기억으로 전시 공간에 금빛길을 만든다.

 

송도(宋滔)는 연안 송씨로,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효자였다. 선생은 울산지역 최초의 생원(生員)으로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정성껏 간호하였다. 모친이 병이 깊어 물고기회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가난하여 마련할 수가 없어 얼음판을 두드리며 울었다. 그러자 붕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또한 제사를 지내려고 제수를 구하니 산의 꿩이 날아들어 왔다고 한다. 1년 사이에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제사지냈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428년(세종 10) 효자로 정려되고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기록되어 있다.

 

효문동(孝門洞)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연안 송씨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효문동에 있었으나, 1737년(영조 13)에 울산도호부 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정려비 앞면은 ‘효자성균생원 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宋滔之閭)’라 적었으며, 뒷면에는 송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정려비 왼쪽의 깨어진 비석은 ‘강희임진(康熙壬辰) 팔월(八月)’이란 구절로 보아, 1712년(숙종 38)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구 우정동에 있던 비석과 비각을 200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효자송도선생 정려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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